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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ganic & Raw, 민열 (MNYL)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필름 사진을 촬영(photograph)하고 인화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일상을 살아가며 자신만의 고유한 잠상(latent image)을 축적한 아티스트는 이를 음과 박이라는 현상액(developer)에 담가 실상으로 떠올리고, 이는 여러 번의 교반 작업을 거쳐 하나의 노래로 인화(print)된다. 이 일련의 과정 가운데 세밀한 변수들에 의해 각기 다른 음악이 탄생하게 된다. OPCD는 저마다의 변수를 지닌 아티스트들을 포토그래퍼로 빗대어 본다. 이들은 어째서 이토록 수고로운 작업에 뛰어들었을까. 이들은 어떤 변수를 따라 어떤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Why Do We Make Music?>은 그 렌즈 너머를 들여다보려 한다.








홍대 라이브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민열(MNYL)은 수수하면서도 거친 날것의 감각이 빛나는 싱어송라이터다. 오가닉(organic)함과 로(raw)함을 넘나드는 특유의 발화법은 강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 “당신은 V 때문에 더 사랑받는 거예요”라고 운을 떼는 ‘아보카도 (AVCD)’의 첫 소절처럼, 그의 의뭉스러운 시선은 일상의 편린들을 날카로이 포착해낸다. 유하게 흐르는 음악 너머 감지되는 까끌까끌한 단면에서 그의 번뜩이는 눈빛을 읽는다.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그리고 새로이 발매된 그의 싱글 ‘멋진 결말’에서, 당신도 “그의 번뜩이는 눈빛”을 발견해내길 바란다.







Why : Why I started Music




음악을 시작하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나?



취향이 특이한 사람. 수다스럽고 무해한 사람이었다.



언제, 어떻게, 왜 음악을 하게 되었나?



4살 정도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큰 흥미 없이 한 10년 치고 그만뒀었다. 그러다 방황을 많이 하던 사춘기 때,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굉장히 화가 나는 상황이었는데, 윌리엄 볼컴의 ‘Graceful Ghost Rag’라는 연주곡이 내게 큰 강렬함을 줬다. (그땐 ‘힘이 된다’ 같은 말의 뜻도 잘 몰랐다) 그래서 외국 사이트를 뒤져서 악보를 찾아 다운로드하고, 체르니 100 수준의 손가락으로 파워풀한 재즈 피아니스트의 래그를 하루에 거의 7시간에서 10시간을 쳤다. 아파트에서 민원도 들어오고 부모님께서 피아노를 갖다 버리겠다 하실 정도였지만, 결국 2주 만에 완곡을 했다. 당시에는 내가 집중하며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고 한 1~2년 후에, 원래도 음악 듣는 걸 좋아하고 특히 자우림, 김윤아의 음악을 좋아했는데, 음악을 듣다가 슬픈 마음이 들어서 문득 가사랑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써보게 되었다. 코드 같은 건 잘 몰랐지만 어쨌든 피아노를 칠 수 있으니까 피아노를 쳤고, 우울한 일이 있을 때마다 계속 곡을 썼다. 결국 고3 때 실용음악 학원에서 6개월 정도 기타를 배우며 입시 준비를 하고 실용음악과에 들어갔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게 생각보다 별로 없더라. 그래서 1년 정도 다닌 다음 자퇴를 하고 홍대에 가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가 하고 있는 게 작곡이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타를 배워서 사람들한테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라는 자각을 하고, 지금과 같은 형태의 작업을 시작한 것 같다.







예명을 별도로 짓지 않은 이유가 혹시 있나?



'무수히 많이 지어보았던 예명 뒤에 결국 내 이름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콤플렉스였던 특이한 이름에서 왠지 모를 강렬함을 느꼈던 것 같다.

원래는 성인 되면 바로 개명을 하고 싶었을 정도로 내 이름을 싫어했다. ‘박민열’ 세 글자에 다 센 받침들이 들어가다 보니 사람들이 ‘민영이’, ‘민희’ 등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발음을 하기도 하고, 새 학년 새 학기 첫날에는 출석을 불러서 대답하면 모든 선생님들이 “어 여자네” 하고 말씀을 하셨었다. 그때는 첫날에 그렇게 주목을 받는 게 싫고 부끄러웠다. ‘나는 지금 이 이름으로는 여자로서 존재하면 안 되는가’ 하는 불편함도 느꼈고. 그런데 딱 20살이 되니 갑자기 모두가 나에게 이름이 너무 특이하고 예쁘다고 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부정적인 마음이 약간 남아있었는데, 성을 지우고 이름만 써서 예명으로 하니 오히려 그걸 기억을 많이 해주시더라. 예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말이다. 나의 음악적인 부분과 이런 특이한 이름의 조합이 뭔가 각인되기 좋은 궁합이었나- 생각도 든다.







음악적인 동료가 있다면?



현재 가장 많은 도움을 주는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 하범석. (멋져!)







We : Latent Music inside Us




주변 사람들은 당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하는가? 당신은 거기에 동의하는가?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는데, ‘웃음, 미소’, ‘정의로움’, ‘n잡러’, ‘고양이 같음’, ‘독립적이고 의존하지 않는 강단 있고 당당한 현대 여성’, ‘백디문(내가 만든 게임 모임이다) 대장’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모두 동의...한다!



‘n잡러’라 함은, 음악과 현재 다니는 직장 외에 또 하시는 일이 있는 것인가?



회사를 다니면서 매주 두 번씩 파주 1사단 여우고개대대의 음악 강사로 파견을 나가 군인 친구들과 교회 예배당에서 함께 음악을 연주했고, ‘더 파이브 올스’라는 8~9년 단골 술집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 퇴근한 다음 아르바이트를 해주기도 하고, 평소 공연하던 라이브클럽 매니저들과 친분이 있어, 오늘 공연 라인업이 펑크가 났다고 연락을 주면 공연 가서 일당 받고, 레슨도 했었고, 여러 행사/강연도 했었다. 또 예전에는 배우 분들과 주말에 도봉산에서 버스킹하면서 엿을 판 적도 있다. 지금은 음악과 회사 일만 하고 있지만, 그런 일들을 많이 했다 보니 주변 오래된 친구들은 다 나를 ‘n잡러’로 알고 있는 것 같다.



게임 모임 ‘백디문’은 어떻게 결성하게 되었나?



처음에는 '제 5인격’ 이라는 게임을 했는데, 같이 할 친구들을 모으고 모으고 하다 보니 다들 예술 하거나 유튜브 하는 친구들이었다. 근데 모이면 음악 얘기는 안 하고 그냥 다락방 같은 룸 카페에서 다 같이 게임 하면서 술 먹고 하는 식이다. 친구들과 요즘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와 ‘폴 가이즈’를 하고 있다. 요즘도 퇴근하고 맨날 사이버 세상에서 만난다.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을 <미녀와 야수>의 벨로 해둔 이유는?



워낙 디즈니나 지브리 류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벨’을 굳이 선택한 이유는 내가 프랑스 여자 같다는 말을 종종 듣기 때문이다.







나의 취향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취향은 있지만 가감이 없는 편이다. 자연스러운 핏, 디테일이 느껴지는 소품, 내추럴 컬러, 프렌치 시크, 빈티지, 카드 게임,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 파스타, 체리, 원목의 가구들…



싱글 ‘I Got A Cold (이상형)’을 기점으로 본인의 “과감한 취향”이 반영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당시 반영된 민열의 “과감한 취향”에 대해 조금 더 듣고 싶다.



원하는 느낌의 전등이 비싸서 전등과 구리 선, 철사, 한지 등으로 전구를 직접 만들어 쓴 것. 옥상이 좋아서 포스터용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 대학병원 직원 동으로 들어가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며 멋져 보이는 옥상에서 촬영을 한 것. ‘이상형’ 작업 당시 메트로놈에 맞춘 기타 리프와 보컬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메트로놈과 리듬 바 없이 내가 듣기 편한 그루브로 리듬을 재조립하여 제출한 것 등.



나의 영감의 원천은?



풍경, 기억 속의 삶, 연인, 모순된 마음에서 오는 수치심.







‘모순된 마음에서 오는 수치심’이라는 표현이 독특하다.



그냥 그렇게밖에 표현을 못 하겠다. 내가 좋아하는 책 중 임솔아 작가의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이라는 시집이 있다. 그 시인 분이 참 나와 비슷한 수치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수치스러운 행동을 해서 가지는 수치심이라기보다는, 우리 다 누구나 그런 마음이 있지 않나. 근데 나는 수치심이라는 것을 꼭 부정적인 것으로 국한해서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에 대한 순간적인 모멸감과 수치심은 부정하려 해도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까지 잡아서 억누를 순 없지 않나. 그저 자연스러운 거라 생각한다. ‘현타’라든지, 노을 보면서 담배나 한 대 펴야겠다- 하는 마음이라든지, 그런 마음이 들 때 나의 감정들이 소중하게 가사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음악 외의 관심사가 있다면?



요즘은 식물 키우기. 이사하면서 로즈마리, 아이비, 몬스테라를 데려와 베란다에서 키우고 있다. 이제 막 한 달도 안 되어서 돌본다기보다는 관망하는 수준이다. (웃음)

다큐멘터리도 즐겨 본다. 최근에는 <씨스피라시>를 인상 깊게 봤다. 사실 그리 중립적인 입장의 다큐멘터리는 아닌데, 왜 그렇게 편향된 시선을 의도할 정도로 상황이 절박해졌는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도 재밌게 봤다. 너무 재밌어서 두 번 돌려봤는데, 70~80년대 인도에서 히피가 한창 유행하고 미국과 유럽에서 불교문화, 공동생활, 무소유 등이 큰 붐을 일으켰을 때 오쇼 라즈니쉬라는 사람이 수장으로 있던 인도의 유토피아 공동체가 어떻게 부흥하고 또 사라지게 되었는가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좋아하는 배우로 에단 호크를 꼽는다. 그 이유는?



배우로서의 삶을 누리는 사람이라기보다 고민하는 사람인 것 같이 느껴져서. 영화 <내 사랑 (Maudie, my love)>을 보면 알 수 있다. 번역 제목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성적이 저조했지만.



민열의 음악가로서의 지향도 에단 호크와 비슷한 것인가?



맞다. 이걸 자기 꿈이라고만 생각하면 그냥 이루면 그만이지 않나. 나는 이걸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죽을 때까지 끌고 가야 하는, 나와 뗄 수 없는 필연적인 무언가. 그래서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느낄 때 큰 감동을 받는다. 내가 울어야 할 일이 아닐지라도 그러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쓰이게 되는 것 같다. 그 자체가 나에게 큰 자극을 주기 때문에. 배우던지, 음악가던지, 문학가던지, 그런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많이 가고 더 집중하게 된다.







Make : Making Development




평소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즐겨듣고, 어떤 루트를 통해 음악을 찾아 듣는가?



요즘은 칠 뮤직을 많이 듣고, 오가닉한 팝 사운드를 좋아한다. 해외 애플뮤직에서 신보를 듣거나 유튜브에서 영상과 함께 보는 것을 즐긴다.



좋아하는 한국 뮤지션 / 해외 뮤지션



김윤아 / 퍼렐 윌리엄스, 섬머 솔트, 디 인터넷



닮고 싶은 아티스트,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듀엣곡을 해본 적이 없는데, 만일 하게 된다면 내 기타 세션으로 열일해주시는 하범석 님과 해보고 싶다. 또, 작가 카인비 님과 자켓 혹은 뮤직비디오 작업을 함께 해보고 싶다.



최근 들었던 음악 중 가장 인상적으로 들었던 것은?



알리 X의 ‘Susie Save Your Love’



올-타임-베스트 노래/앨범 3가지는?



마일스 데이비스 ‘It never entered my mind’, 퍼렐 윌리엄스 [In my mind], 프랭크 오션 [Channel Orange].



평소 선호하는 음악 작업 환경은?



집이 가장 편하고, 이상하게 아침 시간대에 신곡을 많이 떠올린다.







음악 만들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분위기로 끌고 갈 것인지와 가사를 많이 신경 쓰는 편이다.



민열의 곡은 가사에 담긴 시선을 눈여겨보게 된다. 주로 어떤 것들에서 가사를 떠올리나?



내가 하는 생각 중 ‘남들과는 다른 것 같다’ 싶은 부분에 많이 꽂히는 편이다. 예를 들면, ‘내가 ○○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남들 눈에 특이해 보이는구나’ 싶으면 거기서부터 가벼운 산문의 글을 두서없이 풀어가고, 거기서 또 가사가 나오는 것 같다.



만든 지 3년 만에 음원으로 발매한 ‘고양이춤 (I Wish)’과 ‘All eyes on me (딴청을 피워)’처럼 오래 묵혀두고 있는 곡이 많으신 것 같다. 2019년에도 선공개 곡 ‘All eyes on me’ 이후로 EP를 발매할 계획이라 했는데, 프로젝트 앨범 [다른 나라에서] 이후로 아직 발매작이 없는 상황이다. 만든 곡들을 오래 묵혀두게 되는 이유가 있다면?



다른 뮤지션들도 이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가끔 곡을 쓰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그냥 감정을 배설해버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그 곡을 청중에게 들려주기가 망설여진다. 물론 그렇게 쓴 곡도 음악이고 예술의 한 범위이겠지만, 왜인지 자기검열을 하면서 나중에도 내게 좋은 영향을 주는 곡들을 선별해 발매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존재한다. 사운드적으로 유행을 타고 싶지 않은 욕심도 크고.

또 예산이 넉넉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다. 현재는 앨범에 수록할 곡들을 선별하는 작업은 끝났고 예산을 모으고 있다.



그래도 ‘아보카도’ 싱글을 내고 나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겠다’는 확신을 얻으셨다고.



그렇다. 사실 알게 모르게 이쪽은 그런 게 있다. 어린 여자 싱어송라이터면 다들 훈수를 많이 두신다. 그게 좋은 애정일 수도 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그런 건 아니었던 것 같고. (웃음) 프로필 사진도 뭔가 남성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그것보다 이게 예쁘고, 이 치마가 예쁘고, 이 머리가 예쁘다- 라고 하시는데, 찍고 보니 내가 원하는 것과 전혀 같지 않았다. 첫사랑 아오이 유우의 느낌이 나면 좋다고 하시는데, 나와 이야기를 해보면 알겠지만 난 전혀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일단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고 (웃음) 내 나이가 지금 서른인데, 그간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엄청나게 많은 갈증을 느꼈다. 그래서 ‘아보카도’를 할 당시에는 그냥 기타 쳐주는 범석 오빠와 “이제는 진짜 맘대로 해보자”라고 했다. 사실 반응이 그렇게 좋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는데, 음악 하시는 분들이나 믹싱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반응이 좀 좋았다. 특히 중간에 내가 내레이션을 하는 부분에 딜레이가 확 퍼지면서 기타가 갑자기 디스토션 같은 걸 걸고 나오는 구간은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 거였는데, 그게 센세이셔널했다고 많이들 말씀해주셔서 약간 숨통이 트였다. ‘역시 이렇게 하면 되는구먼’하고 기고만장해지고 (웃음) 물론 창작의 고통이 있기 때문에 그리 길게 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땐 기분 좋았다.







일전에 인터뷰에서 “오래 묵혀놓은 곡은 의미가 커요. 실제로 퇴적층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것 같아서 데모들을 자주 듣는 편이에요”라고 이야기하신 바 있다. 최근에 꺼내 들은 데모곡이 있나? 그 곡의 퇴적층은 어땠나?



‘Myself (박 민열)’와 ‘fine (백야)’라는 곡을 최근에 들었다. 인간적으로 좀 더 멀리 있는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가까이에서 보다는 더 멀리서 바라보고, 생각하고, 사랑하려고 한다. 눈앞의 것에 감탄하고 빠져버리던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바랜 채로 아름다운 퇴적층을 간직하고 있는, 안식처 같은 곡들이다.







Music : Printing out Music




이번에 발매하는 ‘멋진 결말’ 역시 다른 발매곡들처럼 예전에 작업해두었던 곡인가?



‘멋진 결말’은 작년 코로나가 가장 심각했던 시기에 만든 곡이다. 한창 우울하고 힘든 시기에 쓰게 되었는데, 가사나 편곡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빛’에 많이 의존했다. 오랜 기간 상수동에 살았는데, 오후에 한강 산책을 가거나 노을을 보거나 간접 조명을 켜는 등 그러한 ‘빛’에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







작업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가사.



그렇다면 이번 곡을 작업하며 처음으로 썼던 가사 구절은?



“배부른 날들은 뱉어”, “함께 왔던 전시회는 혼자 돌아가겠지”



발매 싱글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30~40대 가계 부채가 10년 사이에 2배가 늘었다고 합니다. (웃음) ‘Thug Life’를 살고 있는, 알고 있는, 또는 시작해야 하는 모든 이들에게 덤덤한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있어야 할 곳으로 떠나기로 마음먹은 어떤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멋진 결말’은 훗날 민열 님에게 어떤 퇴적층으로 남을 것 같은가?



평소에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면서 곡 작업을 하지는 않는데 (웃음) 그래도 노력해서 답변해보겠다. 내가 싱글을 안 낸 지 거의 2년이 됐다. 사실 뮤지션으로서 부끄러운 기간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게 코로나가 터졌고, 그동안 난 슬럼프였고, 처음으로 정신과도 다니면서 불면증 약도 먹었다. 나도 나름 아등바등 살았지만, 작품이 없다는 이유로 어쨌든 사람들은 나의 ‘n잡’ 중 하나인 뮤지션으로서의 삶이 멈춰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그런 힘든 시기에 이 ‘멋진 결말’이라는 친구가 나왔고, 그래서 이걸 내게 되면 2년 동안 해묵은 것들이 조금은 내려갈 것 같다. 이 곡을 지금도 계속 듣는데, 들을 때마다 정말 힘들었을 때가 생각나면서 ‘그래도 잘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마음이 서늘해지고 또 편안해진다. 원래 뮤지션들이 자기 곡을 잘 안 듣는다고 하지만, 난 ‘아보카도’랑 ‘멋진 결말’은 계속 들을 것 같다.



발매될 싱글 이외에 현재 준비 중인 것이 있다면?



이 곡과 같이 데모를 작업한 곡이 있는데, EP를 발매하면서 낼지 싱글로 발매할지는 아직 미정이다.




Why do we make music?




지금 당신은 왜 음악을 하고 있는가?



나에겐 소명 같은 것이라서.



음악적으로 이루고픈 목표가 있다면?



나만의 잘 짜인 앨범을 만드는 것.



인생 일대의 꿈은?



우아하게 늙는 것.




Musician 민열 (MNYL)

Interviewer / Editor squib

Contents Manager Lee Sunkyung

Photographer SIN-YOUNG KIM

Graphic Designer preriro

Director op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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